굿민도우미 이번에는 특별한 문화·예술 전시회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목포에 사시는 분들의 지난 시간과 추억을 되살릴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는데요,  문화재청 국립해양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항구도시 목포의 추억 1번지, 오거리」특별전입니다. 이번 「항구도시 목포의 추억 1번지, 오거리」특별전은  2013년 12월 3일(어제)부터 시작하여 내년 2월 23일까지 진행되는데요, 1960~1980년대 의 목포 구도심의 오거리를 재조명 하였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지난 1960~1980년대 의 목포 구도심의 오거리속으로 빠져들어볼까요?

 

 

                                                            1897년 목포개항 당시의 ‘목포 오거리’ [『목포부사』(1930년) 중] 

 

19세기 말까지, 목포는 무안현에
속한 수군진(水軍鎭)이었습니다.

목포는 포구 2곳과 마을 6곳이 있는 작은 어촌마을로서,
서해바다와 영산강 어장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갔습니다.
바다와 갯벌로 둘러싸인 천연의 리아스식 해안에는 무성한
갈대밭이 있고, 철새들이 오가고, 돛배가 항해하였습니다.

 

 

1897년, 평화로웠던 목포항에
무안감리서(務安監理署)가 설치되고,
한 달 후 개항이 되었습니다.

일본은 이후 약 10년간 온금동 다순구미에서 만호진,
송도(현 동명동), 역전파출소에 이르는 해안가를 매립하여
시가지를 만들었습니다.
오거리는 이때 조성된 무안통의 중앙거리입니다.
새로운 땅에는 일본과 서구식 건물이 들어섰고 목포사람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근대도시가 되어갔습니다..

 

 

20세기 초의 도시계획은 오늘날
목포의 오거리와 구도심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목포사람들은 무안동 중앙거리를 ‘오거리’라
불렀습니다. 오거리는 목포 문화예술의 산실이자 목포다운 모습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입니다.
목포역과 국도 1호선, 목포항, 죽동 상점들이 직선거리에 있으며,
1960~70년대에는 다방갤러리와 주점들을 중심으로
문인, 예술가, 음악인과 사진작가 등이 활동하는 장소였습니다.
하당신도시가 개발되는 1990년대까지 ‘
예향 목포’는 오거리에서 꽃피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러한 항구도시
문화를 조명하기 위해
특별전을 열게 되었습니다

오거리 추억전에서는 100여 년 전 바다와 갯벌 매립으로 형성된
목포 원도심 중심지 ‘오거리’ 도시공간을 소개하고,
1950~80년대 선술집과 다방갤러리에서 문학, 예술, 철학, 그리고
삶을 논하였던 목포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하였습니다.
특히,개항 세대 이후, 목포를 이끌어온
제2~3세대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2013년 목포 무안동 오거리 풍경

 

 

일제강점기,
개화의 거리 ‘오거리’

개항과 함께 서양문물이 밀려오면서 목포의 풍경은 크게 바뀌었다. 1899년부터 시작된 해안지역 매립과 외국인 거류지 조성공사로 온금동 다순구미에서 만호진, 송도(현 동명동), 역전파출소에 이르는 지역은 근대적 도시공간이 형성되었다. 오거리는 이때 조성된 무안통의 번화한 중앙거리로서, 목포역-조선인 마을-일본인 마을-목포항이 연결된 다섯 길의 교착점이었다.

                      개항 만35주년 기념 목포사진첩(1932년) 중 소화昭和 거리(현, 기업은행에서 오거리, 목포역 가는 길)

 

 

도시 성장기,
목포문화 중심지 ‘오거리’

광복 이후 ‘목포부’는 ‘목포시’가 되었다. 1950년대부터 목포사람들은 무안통 중앙거리를 ‘오거리’라 불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무안통(일제강점기), 무안동(해방이후), 목원동(현재)에 속하였다. 목포의 상권은 오거리, 목포역 건너 차없는 거리 등 무안동과 죽동 일대를 중심으로 크게 부흥하였다. 1960~80년대 목포시민과 젊은이들, 문화예술인, 지식인들은 이 거리를 아지트처럼 오가며 현대적 대중문화를 만끽하였다. 오거리는 그야말로 목포 문화의 중심지였다.

 

목포극장 (1926~현재)                                                             음악무용발표회 (1960년대, 평화극장)

                                         코롬방제과점 (1949년~현재)                                   목포악기점 (1920년대~현재)

 

                                                명문당 (1940년대~현재)                                         중화루 (1950년대~현재) 

 

 

오거리, 다방갤러리

다방과 카페는 대한제국기에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고,목포에는 개항이후에 무안통 거리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1950~80년대 화랑과 미술관이 없던 시절, 오거리 시내 중심가 다방들은 작은 미술관이자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다. 또한 목포 최초의 문화예술단체인 목포문화협회가 1958년 이곳 오거리에 뿌리를 내렸다. 1950~60년대는 다방문화의 전성시대였다. 1970~80년대의 미로다방, 황실다방, 세종다실 등 화랑전문다방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새마을다방은 1980년대까지도 목포 다방의 터줏대감 자리를지켜왔다.

 

                  10대전代展 4회 리플렛, 1960년, 길다방                             야우회전野牛會展 리플렛, 1965년, 용다방

 

                                                                                                         다방갤러리 리플렛

 

 

목포미술의 흐름

목포의 근・현대 미술은 전통 한국화와 서양화가 만나 목포화단을 구성하면서 뿌리를 내렸다. 광복 이후 일본에서 유학하던 목포와 전남지역 화가들이 귀향하여 목포에서 활동하였으며, 남농 허건, 취당 장덕, 문원 문재석 등이 중심이 되어 목포화단을 이루었다. 서양화가들은 전남 최초의 미술동인 「목포미술원」과 「녹영회」를 창립하였다. 1950년대 김환기와 양수아를 통해 한국 추상미술운동이 활성화 되었다. 1958년 8・15 광복을 기념하여 젊은작가들의 「10대전(十代展)」 창립전과 기성세대 작가들의 「삼인전(三人展)」 창립전이 열렸다. 그룹전은 목포화단과 호남화단에 새로운 미술운동을 펼쳤으며, 호남화단의 새로운 구심점이 되었다.

 

                                                                       목포 다도일우木浦 多島一遇, 남농 허건(1907~1987년)

 

                      예총목포지부회관木浦藝總支部會館, 1961년, 소전 손재형(1903~1981년), 한국예총 목포지부 소장

 

강흘러 바다에
1961년, 평보 서희환,
(1934~1998년)
한국예총 목포지부 소장

 

              소나무木松, 1961년, 남농 허건(1907~1987년), 한국예총 목포지부 소장

 

한국예총 목포지부 설립을 기념하며, 소전 손재형, 남농 허건, 평보 서희관이 쓰고 그린 작품이다. 목포문화예술단체의 뿌리는 1958년 설립된 목포문화 협회이다. 백홍기(회장), 강동문, 김수호 등 서양화가 11명이 중심이 되어 결성되었다. 오거리의 협회사무실은 차재석이 지키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백홍기가 늘 함께 있었다. 1970년대 이후 문화협회가한국예총 목포지부로 바뀌면서 사무실도 공설시장내 시민회관으로 이전하였다. 

산수山水, 시대미상, 아산 조방원(1922~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作品, 1971년, 양수아(1920~1972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은총의 빛, 2000년, 김암기(1932~2013년)
한국예총 목포지부 소장

 

 

 

오거리, 목포문학

목포에는 명예로운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5명이 있다. 소설가 박화성, 극작가 차범석, 서양화가 김환기, 한국화가 허건, 현대무용가 최정자이다. 이 가운데 박화성은 목포의 근대문학을, 차범석은 목포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목포 문학은 바다가 품은 감수성과 항구도시의 문화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광복 이후 문단 등단이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었던 시기, 목포의 문인들은 한국문단을 파고들었다. 목포출신이라는 자부심이 문학의 길을 가는 하나의 힘이었다. 목포는 지방 소도시이지만 문학잡지가 일찍부터 발간되었다.1930년 『호남평론』, 1945년 『예술문화』, 1951년 『갈매기』와 『전우』가 발간되었다. 1952년에는 『시정신』, 1960년에는 『목포문학』이 창간되었다. 1962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동인지인 『산문시대』를 5집까지 발간하였다. 그리고 목포시내 학교의 문예지들이 꾸준히 발간되었으며 이는 훗날 목포문학의 밑거름이 되었다.

 

                               1950년대 이후의 학교 문예지          목포문학 제3집 1964년, 목포문인들을 집결하게 한 문학잡지

 

 

 

추억의 서점

오거리에는 서점들이 밀집해 있었다. 서점은 아날로그시대 지식과 정보, 대중문화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으며, 1970~80년대 젊은이들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였다. 무안동의 문화당서점, 대양서점, 차 없는 거리의 삼일서점(해방 이전), 평화서점, 문우사, 국제서점 등이 있었다. 지금은 국제서점만이 위치를 옮겨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문화당서점은 1920년대부터 2012년까지 운영된 전남 지역 최초의 현대식 서점이었다. 대중서적보다는 주로 문화당에서만 구할 수 있는 학술・전문서적을 취급하였고, 우리 문화와 고전을 보급하는데 한 몫을 하였다.

 

 

 

 

추억의 선술집

도심의 뒷골목은 사람들의 사적이고 자유로운 삶의 공간이었다. 골목의 상징은 선술집이다. 삼삼오오모여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날이 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던 곳이었다. 목포 선술집 중 여러 세대에 걸쳐 가장 많이 추억하는 곳은 동천주점이다. 동천주점은 원조 고래고기 상점이었다. 그리고 얼큰한 가오리찜으로 유명한 ‘대안주점’, 그 아래 골목에는 얼큰한 생선찜을 내놓는 ‘도미정’이 있었다. 이어 청주를 서서 마시는 대포집 ‘이학’, 홍어와 고래요리로 이름난 ‘덕인주점’도 빼놓을 수 없었다.

 

 

목포가수, 목포노래

우리나라 대중가요는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유성기와 라디오, 방송국 등 대중매체를 기반으로 발전하였다. 목포는 1920~30년대 극장과 축음기의 보급으로 대중음악의 황금기를 맞았다. 윤심덕의 「사의찬미」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은 인기 절정이었다. 1960년대 이후 목포 출신 가수로는 「가슴아프게」, 「빈잔」을 부른 남진 , 「여고시절」의 이수미, 「먼 데서 오신 손님」의 조미미 등이 있다. 이들이 활동하면서 목포 대중음악은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난영의 음악앨범
1960년대, 조문희 소장

 

남진의 음악앨범
1972년, 민영철 소장

 

조미미의 음악앨범
1972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김씨스터즈의 첫 앨범
1962년, 민영철 소장

 

제니스 진공라디오 1945년, 가수 남진 소장
목포일보 발행인이자 남진의 아버지인 김문옥이 사용했던 라디오이다.

 

남진의 영화대본 ‘어머님전상서’
1971년, 가수 남진 소장
남진, 문희 주연의 영화 대본이다.

 

 

 

특별전 부대행사

 

‘미워도 다시 한 번(1968년 작)’

특별전 부대 행사(한국영상자료원 공동 주최)로 오늘 12월 4일 오후 7시에 목포 센트럴 극장(구 목포극장)에서 ‘미워도 다시 한 번(1968년 작)’이 무료로 상영한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의 눈물을 자아냈던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 작품을 관람하실수 있는 좋은 기회인것 같습니다.

목포 사람이라면 누구나 목포 오거리를 알고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세대에 따라 오거리에 대한 기억은 모두 다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런 세대 간의 다른 기억들이 교류하고 소통하여 새로운 기억을 낳고 또다른 추억이 되지 않을까요?!

 

 

 

좋은 자료를 제공해 주신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다섯가지 주제로 이루어진 「항구도시 목포의 추억 1번지, 오거리」특별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잘보셨나요? 이 자료를 만드는 내내 목포오거리의 추억속에서 저는 행복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의 한 획을 그었던 목포 오거리, 목포에 사시는 분들은 꼭 한번 전시회를 찾아주세요~

각종 정부민원에 문의, 고충상담은?!

110번(채팅상담,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문의해주세요

 

 

아래 배너를 클릭하시면 110번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어요~오키

 

출처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문화재청

원본글 : http://www.seamuse.go.kr/bbs/board.php?bo_table=sub521&wr_id=14 , 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newsItemId=155698489&sectionId=b_sec_1&pageIndex=2&pageUnit=10&strWhere=&strValue=&sdate=&edate=&category=&mn=NS_01_02

 

 

 

Posted by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콜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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